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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의 그 시절 그 노래] 노래방 가사, 문제 있다

기사승인 2017.05.12  09:2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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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

최근 우리사회는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들이 활발하다. 타성(惰性)과 고정관념에 젖어서 고치기 힘든 것들이 어디 한두 가지이랴.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잘못된 것은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바로 잡아야 하는 것들로는 정치, 경제, 교육, 관습, 역사, 문학사, 봉건적 잔재, 식민지의 유습, 성 편견과 차별 등등 이루 헤아릴 길이 없다. 이 가운데서 우리는 오늘 가요와 관련된 문제점 하나를 이 자리에서 제기하고자 한다.

다정한 사람들과 삼삼오오 어울려서 노래방을 가보지 않은 분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가라오케(カラオケ)’란 이름으로 일본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한국에 도입된 이 노래방 문화는 도입 시기 민족적 거부감이 전혀 없었던 것이 아니나 현재는 우리 생활문화의 도구로 버젓이 자리 잡게 되었다. 가라오케란 말은 빈 것을 가리키는 일본어 ‘가라〔空〕’와 영어 ‘오케스트라(orchestra)’의 합성어로 만들어졌다.

악단(樂團)이 없는 가짜 오케스트라, 즉 무인 오케스트라라는 뜻이다. 노래반주만을 녹음하여 그것에 맞추어 노래하기 위한 테이프나 디스크, 또는 그 연주 장치를 일컫는다. 사람이 연주를 하는 대신 기계가 합성하는 반주음(伴奏音)에 맞춰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하는 기계, 혹은 그 기계를 설치한 술집 따위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이것이 한국에 유입된 이래로 흔히 노래방, 가요방 따위로 부르는데, 사실은 녹음반주란 용어가 가장 정확하다.

노래방은 현대 한국인들의 삶에서 매우 친숙하고 사교적인 공간이 되었다. 하루의 피로를 풀고, 정겨운 사람들과의 오붓한 시간을 즐기는 방식으로 노래방이 적절한 장소로 정착된 것이다. 이와 더불어 노래방 기기의 제작과 판매, 프로그램의 개발 등 노래방 산업도 나날이 성업 중이다. 현재 두어 군데의 대표적 제조업체가 이 노래방 산업을 전국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업체들의 노래방 관리는 너무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여기서 지적하는 관리의 문제점이란 주로 기계에 입력된 가사들의 오류에 관한 부분이다.

나는 노래방 문화를 그리 즐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나치게 큰 소음에 묻혀 잔잔하고도 조용한 대화나 즐김의 방식이 전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노래란 부르는 사람과 함께 시선을 마주 보면서 마음을 소통하고 교류하는 어울림과 친화(親和)의 과정이 되어야 하는데, 노래방 문화는 어둡고 밀폐된 방에서 오로지 모니터만 일제히 바라보기 때문에 소통과 교류는 극히 제한적일 뿐이다. 또 계량적 점수에만 집착하도록 장치를 설정하여 점수의 높낮이에 공연히 기분이 상하도록 만들어놓았다.

▲ 행락철 관광버스는 ‘달리는 노래방’으로 변신한다

행락철 모든 관광버스는 돌아오는 길에 ‘달리는 노래방’으로 변신한다.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통로에 선 채로 위험하게 몸을 흔들며 거의 발작적인 음주가무로 광란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아슬아슬하기까지 하다. 버스기사는 경찰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차창의 커튼을 치고 승객들은 거의 사이키델릭(psychedelic) 분위기가 느껴지는 환각적 불빛과 현란한 조명을 즐길 수 있도록 틀어주며 그것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친절하게 배려한다. 버스통로에 서서 승객들이 마치 환각제에 취한 듯 일제히 무도(舞蹈)에 열중할 때 버스가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기까지 한다.

노래방 분위기를 별반 선호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단체행사의 뒤풀이 때 부득이 가야만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어느 날 나는 노래방에 가서 내키지 않는 가창(歌唱)을 하게 되었는데, 그래도 분위기에 적응하려는 나름대로의 노력을 보이면서 선호곡(選好曲)들을 몇 가지 골라 불러보았다. 하지만 너무도 잘못된 가사가 모니터에 그대로 연속해서 떠오르는 바람에 몹시 실망해서 한 순간 맥이 빠지고, 더 이상 노래를 부르고 싶은 흥이 말끔히 사라지고 말았다.

가요반주기 제작자들은 전체국민들이 향유하는 기계의 정확성과 편리성을 항시 관리하고 점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틀린 가사, 왜곡된 가사, 잘못 입력한 가사를 제작 당시의 오류 그대로 올려놓고 이후 수십 년이 넘도록 방치시켰다. 결과적으로 가요 유통의 질서 자체를 현저히 왜곡하고 교란시키며 파괴하는 엄청난 잘못을 저질러온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이런 문제점에 대하여 그 누구도 왜곡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는데, 그 까닭은 옛 가요의 노랫말에 대해 안목과 지식을 갖춘 가요팬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맞는지 틀린 것인지 전혀 최소한의 분별능력조차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제작자 스스로도 오류를 시정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음악에 대한 감각이나 지각이 무디어 음의 가락이나 높낮이 등을 제대로 식별하지 못하거나 발성하지 못하는 사람을 흔히 음치(音癡)라고 한다. 그런데 노래방 문화가 일반화된 이래로 사람들은 스스로의 기억 속에서 가사를 또렷이 되새겨 노래를 불러내지 못하는 ‘가사치(歌詞癡)’가 되고 말았다. 그것은 마치 자동차 네비게이션이 필수품으로 부착된 이래로 대다수 운전자들이 길을 찾아가지 못하는 ‘길치(癡)’가 된 것과 동일한 원리이다. 모임자리에서 노래를 요청받은 사람들은 어김없이 ‘나는 모니터가 없으면 노래를 부를 수 없다’며 난감한 표정을 짓거나 거절하기 십상이다.

이제 노래방 기계에 담겨 있는 잘못된 사례를 우선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 들어보기로 하자. ‘고향의 그림자’(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 남인수 노래)의 2절, ‘종달새 외로이 떠있는 영도다리~’에서 ‘종달새’는 ‘초승달’이 맞다. 도대체 부산의 명물 영도다리 위에 종달새가 떠있다는 서술은 너무 뜬금없다. 푸른 바다 위에 초승달이 떠 있어야지 웬 종달새인가?

 

▲ 백난아의노래 ‘찔레꽃’ 음반 ©이동순

남북한 겨레가 함께 즐겨 가창함으로써 이제는 민족의 노래가 된 ‘찔레꽃‘(김영일 작사, 김교성 작곡, 백난아 노래) 2절에 나오는 ‘철의객점’이라는 단어는 ‘천리객창(千里客窓)’이 맞다. 천리객창은 ‘고향집을 떠나 먼 곳에서의 고달픈 객지살이’란 뜻이 들어있다. ‘못 믿을 사람아’도 ‘못 잊을 동무야’가 맞다. 분단 이후로 그토록 아름답던 ‘동무’란 어휘가 공산주의 체제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모두들 기피하는 금기어(禁忌語)가 되면서 사람, 친구 따위로 바뀌었다. ‘노래하던 동창생’은 ‘노래하던 세 동무’로 고쳐야 한다. ‘작년 봄에 모여앉아 찍은 사진’도 ‘삼년 전에 모여 앉아 백인 사진’으로 바꿔야 한다. 사진을 ‘찍는다’라고 하지 않고 ‘박는다’라고 했던 옛사람들의 어법이 그대로 풍겨나는 정겨운 말이다. ‘매일같이’도 ‘하염없이’가 맞다. 가사가 왜곡된 ‘매일같이’로 부르면 문맥의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야릇한 한국어 조어법(造語法)이 되고 만다. ‘바라보던’도 ‘바라보니’로 바꿔야 한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이 노래의 웬만한 가사소개에서 아름다운 3절이 누락되어 있다는 점이다.

연분홍 봄바람이 돌아드는 북간도
 아름다운 찔레꽃이 피었습니다
 꾀꼬리는 중천에서 슬피 울고
 호랑나비 춤을 춘다 그리운 고향아
-백난아의 ‘찔레꽃’ 3절

간혹 3절 가사를 소개한 자료에서조차 왜곡이 발견되는데 ‘돌아드는 북간도’를 ‘날아드는 내 고향’으로 변조시켰다. 뿐만 아니라 끝 부분인 ‘그리운 고향아’를 ‘즐거운 시절아’로 아주 탈바꿈시키고 있다. 이 노래의 3절에 등장하는 북간도(北間島)라는 공간은 1960년대 초반 가사에서 함부로 다룰 수 없는 공산권 적성국가(敵性國家)의 기피지명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분단시대가 초래하는 정치적 금지와 제약 때문에 작사자 김영일은 자신의 원작에 기어이 내키지 않는 수정과 가필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모양이다.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그 변조내용에 대해서는 이 노래 발표당시에 제작된 SP음반의 음원과 가사지(歌詞紙)를 확인하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원곡가사와 전혀 다른 의미 불상(不詳)의 엉터리 단어나 구절들을 잔뜩 채워 넣어서 노래의 분위기를 망가뜨린 까닭이 무엇인가? 실수인가? 고의적 혼란인가? 대체 반주기 제작자들은 어디서 무얼 보고 이런 터무니없는 내용의 가사를 경솔하게 입력시킨 것인가.

이렇게 남한에서 잘못 작성된 가사를 북한의 가요사 연구가 최창호는 자신의 저술 ‘민족수난기의 가요들을 더듬어’(평양출판사, 1997)와 ‘계몽기가요선곡집’(평양 문학예술종합출판사, 2001)에서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의 오류(誤謬)가 또 다른 오류와 왜곡(歪曲)의 수렁으로 빠져들게 하고 있는 심각하고도 비극적인 아이러니라 하겠다.

 

▲ 일제강점기와 보릿고개 등 힘겨운 시간을 묵묵히 견디며 극복하도록 도와준 대중가요 가수와 음반들. 그러나 신라의 달밤, 번지없는 주막 등의 명곡들도 노래방 가사가 잘못 표기돼있다. ©이동순

1970년대 후반 노래방 기기가 처음 제작 판매되기 시작하였을 때 북한당국은 이 신기한 기계를 남한에서 수입하여 자신들의 혁명가요를 비롯한 여러 가요들을 입력했으리라. 그때 식민지시절의 옛 가요 중 그들의 판단에 부합되는 여러 가요작품들을 ‘계몽기시대의 가요’란 명분으로 기기 내부에 그대로 남겨두었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남한의 틀린 노래가사가 고스란히 북한의 노래방 기계에 유입되어 들어간 것이다.

최창호는 잘못된 노래가사를 정본(正本)으로 여기고 채록해서 자신의 연구 텍스트로 삼았다. 그의 저술을 살펴보면 ‘찔레꽃’ 노래가사에서 ‘천리객창’을 ‘철의객점(鐵의 客店)’으로 잘못 소개할 뿐만 아니라, ‘철의객점’에 대한 황당무계한 해설까지 덧붙이고 있다. 즉 평안북도 운산(雲山)의 금광 입구에는 ‘철의객점’이란 이름의 주막집이 있었는데, 그 주막집 주모와 금광의 광부들의 관련설화까지 어색하게 날조해서 횡설수설하고 있다. 이는 틀린 사실을 정설로 여기면서 거듭 오류를 증폭시키는 치명적인 문화파괴행위라 아니할 수 없다. 만약 이 자료를 전후 속사정 모르는 한국의 후대 가요사연구자가 글을 쓸 때 그대로 인용하게 된다면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참으로 아찔하고도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다.

‘직녀성(織女星)’(처녀림 작사, 김교성 작곡, 백난아 노래)도 오류투성이다. 오류라기보다는 분단 이후 원곡가사를 배제하고 아예 개작버전으로 대치하고 있었다는 새로운 사실이 보인다.

낙엽이 정처 없이 떠나는 밤에/ 꿈으로 아로새긴 정한 십년기/  가야금 열두 줄에 시름을 걸어놓고/ 당신을 소리쳐서 불러본 글발이요

오작교 허물어진 북쪽 하늘에/ 절개로 얽어놓은 견우직녀성/ 기러기 편지 주어 소식을 주마기에/ 열 밤을 낮 삼아서 써놓은 글발이요

시름은 천 가지나 곡절은 하나/ 정 하나 잘못 주어 헝클은 꿈아/ 달 한 쪽 걸어놓은 북방길 아득한데/ 냉수를 기름삼아 빗어본 참빗이요
-‘직녀성’ 원곡가사

이것은 원곡가사로 고유의 정서와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다음 가사는 개사된 형태로 고유의 미학적 분위기가 상당히 훼손되어 있다. 원곡가사의 상당부분을 유지시키면서 아주 다른 분위기의 노래로 모습을 바꾸어 놓았다. 누가 무엇 때문에 이런 개작을 해서 유통을 시켰는지는 그 자세한 경과는 현재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추정되는 것은 이 작품이 월북 작사가 박영호의 작품이었으므로 태평레코드사 전속작사가였던 김영일이 분단 이후 이런 개작을 해서 유통시킨 것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그러니까 가수 백난아는 일제말과 분단이후 등 두 시기에 동일한 곡조의 서로 
다른 가사로 ‘찔레꽃’ 노래를 취입했던 내적인 슬픔을 분명히 경험했을 것이다. 원곡가사와 개사버전을 서로 비교해보면 그 원본의 고유성이 얼마나 훼손되고 변조되어 있는지 분별하게 될 것이다.

낙엽이 소리 없이 떨어지는 밤/ 꿈으로 아로새긴 정한 십년사/ 가야금 열두 줄에 시름을 걸어놓고/ 열 밤을 불러봤소 님의 그 이름

꽃잎에 맺은 순정 시들어지고/ 얄궂은 설움 속에 눈물만 젖어/ 저 멀리 깜박이는 시름성 별빛처럼/ 외롭게 혼자 남은 몸이랍니다

시름은 천 가지나 곡절은 하나/ 그 곡절 그 사연에 십 년이 갔소/ 기러기 날개 끝에 전해준 그 사연을/ 보시나 못 보시나 가슴 저리네
-‘직녀성’ 개사버전

‘신라의 달밤’(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 현인 노래)에서도 ‘금옥산’은 ‘금오산(金鰲山)’으로 바꿔야 한다. 흔히 틀리기 쉬운 이 부분을 자주 지적하는 데도 다른 회사의 여러 노래방 가사마저 아예 틀린 것을 연쇄적으로 입력하고 있다.

‘짝사랑’(천봉 작사, 한복남 작곡, 손인호 노래)에서는 ‘내가 잘나’를 ‘네가 잘나’로 바꿔야 문맥이 통한다. 이것은 가사를 입력하던 담당자의 명백한 실수로 보인다.

‘번지 없는 주막’(처녀림 작사, 이재호 작곡, 백년설 노래)에서는 틀린 맞춤법으로 가사를 써놓았다. ‘애절구려’를 ‘애절쿠려’로 고쳐야 한다. ‘고향초(故鄕草)’(김다인 작사, 박시춘 작곡, 장세정 노래) 가사도 명백한 오류투성이다. ‘곱게 피었네’가 아니라 ‘곱게 피는데’가 맞다. ‘서리도 차네’가 아니라 ‘서리도 찬 데’로 고쳐야 한다.

고복수의 ‘짝사랑’(박영호 작사, 손목인 작곡), 이난영의 ‘해조곡(海鳥曲)’(조명암 작사, 손목인 작곡), ‘목포는 항구’(조명암 작사, 이봉룡 작곡), 장세정의 ‘연락선은 떠난다’(박영호 작사, 김송규 작곡) 등의 노래들은 아예 분단 이후의 개사(改詞) 버전으로 잔뜩 채워져 있다. 가요팬들은 원곡가사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과 갈증을 여전히 갖고 있는 것이다.

남인수(南仁樹, 1918~1962)의 노래 하나는 제목부터 틀렸다. 즉 ‘남아일생(男兒一生)’(조명암 작사, 이봉룡 작곡)이 그것인데 이를 ‘남아의 일생‘으로 잘못 써놓고 있는 것이다. 가사도 오류로 가득한데 ‘얼음장’을 ‘어름장’으로 잘못 표기하고 있다. ‘엽랑’도 ‘염랑(來囊)’이 맞다. 염낭은 둥글고 위는 모진 모양으로, 아가리에 잔주름을 잡고 두 개의 끈을 좌우로 꿰어서 여닫게 한 작은 주머니를 가리키는 옛말이다. 3절은 전혀 낯선 내용이 버젓이 들어가 있다. 이젠 분단 이후 추미림, 박남포 등의 이름으로 개사된 노랫말을 폐기할 때가 지났으므로 당연히 조명암 작사의 원곡가사로 고쳐서 입력해야 한다.

1963년에 발표된 오기택(吳基澤, 1939~ )의 노래 ‘우중(雨中)의 여인’ 2절도 오류로 가득하다. 원래 2절 가사는 ‘비바람이 휘몰아쳐 전등도 꺼진 밤/ 못난 인생을 저주하며 흐느끼는 여인아/ 행복을 빌자고 맹세한 말 잊었는가/ 그대로 울지 말고 돌아가다오/ 그대로 돌아가다오/ 깨물은 그 입술을 보이지를 말고서’이다. 그런데 이것을 ‘바람 불고 비오는 밤 어둠을 헤치고/ 우산도 없이 걸어가는 나의 젊은 여인아/ 사랑의 슬픔은 젊은 한때 있는 사연/ 눈물을 거두고서 돌아가려마/ 그대로 돌아가려마/ 비개인 뒷날에는 밝은 태양 비치고’로 전혀 분위기가 다른 낯선 가사로 대치되어 있다. 몹시 어색할 뿐만 아니라 원곡가사에서 느껴지는 가창의 고유한 정서와 느낌마저 사라져버린다.

‘일자일루(一字一淚)’(고려성 작사, 전기현 작곡, 백년설 노래)에서는 ‘잊자니’를 ‘잊자다’로 고쳐야 한다. 그 틀린 사례가 워낙 많고 많아서 여기에 일일이 옮기기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생긴 것일까?

노래방기계에 가사를 입력해 넣는 과정에서 잘못 입력된 가사를 확인, 검색, 수정하는 절차가 전혀 없었던 것에 일차적 원인이 있다고 본다. 가사입력 담당자의 실수가 거의 대부분이다.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지만 노래방 제조회사에서는 가사입력을 전담하는 안목 있는 직원을 채용하지 않았을 터이고, 인건비 절감차원에서 대개 시급이나 일당을 지급하는 임시고용직에게 이 일을 맡긴 것이 아닐까 추정된다. 그러니까 결국 이처럼 너무도 많은 오류가 발생했고, 이후 전혀 시정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오랜 세월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분단 이후 조명암(趙鳴岩, 1913~1993), 박영호(朴英鎬, 1911~1953) 등 월북 작사가의 노랫말을 개사한 작품의 경우다. 이 사례들도 조명암의 경우는 이미 저작권이 원작자의 남한 유족에게 반환되었으므로 즉시 원곡가사로 바꿔 실어야 한다.

추미림(秋美林), 박남포(朴南浦)란 이름들은 작사가 반야월(半夜月, 1917~2012)이 분단 이후 냉전체제의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월북 작사가의 아름다운 가요작품을 계속 유통시키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노랫말의 일부를 부분 개작할 때 썼던 예명들이다. 이젠 그 이름을 모두 거두어 내리고 원작자의 이름과 작품으로 바꾸는 것이 맞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래방 가사에서는 여전히 개사한 노랫말 버전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불리고 있다. 모니터를 보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그저 모니터에 떠오른 가사만 믿고 그대로 따라 부르기 때문에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한때 어이없는 개사과정을 겪었던 노래에서 작사자, 작곡가 표시는 당연히 원곡 작가로 바꾸어야 한다. 개사를 주도한 분의 이름이 지금도 그대로 떠올려진다. 심지어는 전혀 낯선 작사자의 이름이 올라간 경우도 있다. 남인수의 노래 ‘낙화유수(落花流水)’(조명암 작사, 이봉룡 작곡, 남인수 노래)의 경우 조명암 작사로 밝혀졌고, 저작권반환도 이루어졌다. 그런데도 특정회사 제조의 노래방 모니터에서 이 곡의 작사는 문인영이란 전혀 느닷없는 이름으로 버젓이 올라가 있다.

노래방 노래의 가사가 어떻게 잘못 입력되었는지 가요전문가로 구성된 조사위원회 구성의 필요성이 먼저 제기된다. 위원회에서는 그 사례부터 정확하게 찾아내어야 한다. 모든 오류가 확인 정리되면 이를 낱낱이 고증(考證)하고 심의해서 오류를 바로잡아야 한다.

분명 잘못된 것은 시급히 수정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커다란 오류는 오랜 세월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참으로 해야 할 과제들이 많을 터이나 흉물(凶物) 노래방 문화와 그 안타까운 현실은 결코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다. 관계전문가 및 가요팬들의 냉철한 판단과 각성을 촉구하는 바이다. 

 칼럼니스트 이동순 : 영남대 명예교수, 계명문화대 특임교수,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

이동순 칼럼니스트 sundaykr@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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