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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酒)문화 이제는 바꿔야 한다

기사승인 2017.08.07  09: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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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호의 세상만사

조성호 칼럼니스트

술은 인생이라고 한다. 맛이 쓰지만 취하고 때론 달고 시며 때에 따라 오묘한 맛을 내기도 한다. 술 한 잔에 울고 웃는 게 인생이다. 적당히 마시면 시인도 되고 철학자가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인생의 애환을 술로서 표현한다. 술이란 웃고자 하면 한없이 웃음이 되고 울고자 하면 한없이 사무치게 된다. 즉, 한잔 술에 울고 웃는 게 인생이다. 우리는 술을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마신다. 

고금에는 술과 관련된 얘기가 많은데, 특히 술과 시가(诗歌)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 ‘좋은 술을 마셔야 좋은 시가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 고대의 시인들은 모두 술을 즐겼다. 시선이라고 불리는 당나라 대시인 이백은 술을 목숨처럼 아꼈고 자신을 주선(酒仙)이라고 자칭하기도 했다.  또 그는 ‘장진주(將進酒)’에서 ‘마시기로 했으면 한 자리에서 삼백 잔은 마셔야 한다(會須一飮三百杯)’고 읊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만고에 쌓인 시름을 씻어 보기 위해서(銷萬古愁)라고 했다. 

술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다. 기원전 5,000~3000년 전부터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에서 포도주를 빚었다고 하고, 소주는 기원전 3000년경 서아시아의 수메르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한다. 수메르인들이 증류주를 처음으로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증류주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원나라 때 이므로 무려 4000년이 걸려서 동방에 전파 되었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걸린 것은 술을 즐기지 않는 이슬람민족이 실크로드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소주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고려 후기 원나라로 부터였다. 소주(燒酎)란 단어는 한자어로 우리나라와 일본에는 소주를 의미하는 고유어가 없다. 소주(燒酒)의 '소'는 세 번 고와 내린다는 뜻이다. 원나라는 페르시아의 회교 문화를 받아들였으며, 그 세력은 중국은 물론 한반도에까지 미쳤다. 몽고의 이러한 세력 확장에 따라 페르시아 증류법이 몽고 만주를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술이란 참 묘한 것 같다, 과음은 나쁘다고 하면서도 살아가면서 어떨 때는 술이 필요한 상황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종종 느끼기 때문이다. 가령 커피나 음료수를 마시면서는 이야기가 잘 통하지 않을 때나 상대에 대해 좀 더 잘 알고자 할 때는 술이 효과적일 수 있다. 물같이 생긴 게 물도 아닌 것이 참 묘하다. 그동안 술은 건배에 의해서 결속되는 사람들의 공동체, 우정, 형제애를 보장하는 상징이 되고, 그 확인과 보장의 매개체로서 술이 신성시되는 되었다. 

곧, 고대 사회의 제의에서 술잔을 높이 들고 신과 소통하는 제사장의 신성한 행위의 속화된 형태가 이후 건배로 남게 된 것이다. 과거 술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차지했던 것은 바로 종교적인 제의에서였다. 예수는 최후의 만찬에서 포도주를 마셨고,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행했다. 고대사회에서 역시 짐승의 피와 고기를 술과 함께 바침으로써 풍요를 빌었다. 

그런데 한자로 술 주(酒)자는 왜 물(水)옆에 닭유(酉)일까? 술 주(酒)자의 옛날 말은 유(酉: 닭, 서쪽, 익을)자이다. 유(酉)자는 밑이 뾰족한 항아리 모양의 상형 문자에서 변천된 것으로 술의 침전물을 모으기 위하여 끝이 뾰족한 항아리 속에서 발효시켰던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 후 유자가 다른 뜻으로 쓰이게 되어 삼수변이 붙게 된 것인데 옛말(古字)에서는 삼수변이 오른쪽에 붙어 있었다. 

물 수(水)와 술을 뜻하는 술항아리가 합쳐 술 주(酒)자가 된 것은 술항아리 안의 곡주에 막걸리처럼 물을 첨가하여 걸러 냄으로써 유래한 글자로 추론할 수 있다. 오늘날 술과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글자 가운데서도 유(酉)자가 들어 있는 글자들 중에는 애초에 술과 관련되었던 글자가 많이 있다. 술을 뜻하는 유(酉)가 변으로 들어간 모든 한자는 발효(醱酵)에 관한 광범위한 식품명이다.

다른 이야기로는 삼수변(水)에 닭유(酉)를 붙인 것은 닭이 물 한 모금 마시고 하늘 쳐다보듯이 천천히, 적당히 마시라는 뜻과 술 먹는 술시가 유시(酉時)인 오후 6시여서, 그 이후에 술을 먹으라는 뜻이라는 설도 있고, 아무리 술을 많이 먹는 술 귀신이라도 닭이 꼬끼오하고 새벽을 알리는 울음을 터트리는 새벽에는 귀가하라는 뜻이라는 설도 있지만 어느 것이 맞는지는 정확하지는 않다. 

최근 2017년 6월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1명의 연간 술 소비량이 지난 50년간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소비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술도 막걸리에서 맥주로 바뀌었다. 연간 주류 출고량(수입분 포함·주정 제외)은 1966년 73만7천㎘에서 2015년 375만7천㎘로 5.1배 늘었다. 같은 기간 20세 이상 성인 인구는 1천378만4천명에서 4천92만1천명으로 3배 증가했다. 이에 따라 성인 1명당 연간 술 소비량은 50년 사이에 53.5ℓ에서 91.8ℓ로 1.7배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흔히 많은 사람들은 술 하면 러시아를 떠올린다. 러시아가 추운 나라여서 모든 러시아 사람이 독한 술을 물마시듯 한다는 이야기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러시아가 추운 나라라서 모든 국민이 술을 많이 마신다는 것은 편견일 뿐이다. 한국 사람과 비교해도 술 마시는 습관에서 큰 차이가 난다. 우선 러시아 사람 대부분은 평소에는 술을 많이 안 마신다. 

그러나 명절 때나 각종 파티 때는 ‘올인’ 하는 식으로 술을 엄청나게 마시는 편이다. 게다가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을 선호하기 때문에 이런 러시아 사람의 기호와 습관으로 인해 ‘역시 러시아 사람은 술을 많이 마시는구나!’라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특정한 이벤트가 있을 때를 제외한 평소에는 술꾼이 아닌 이상 술을 피하는 것이 러시아 사람의 일반적인 습관이다. 주중에 퇴근해서 술을 즐기는 사람도 많지 않을뿐더러 주중에 술을 소비하는 사람에 대한 사회적 시선도 곱지 않다.

반면, 한국의 술 문화는 이와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음주문화 중 하나는 주중에도 자주 회식을 하는 거다. 다음 날 출근을 해야 하는 평일에도 상사가 제안만 하면 전원이 회식을 하러 간다. 한국 특유의 문화와 정서상 이런 자리를 피하는 것을 동료들이나 상사가 안 좋게 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석하는데, 술 마실 것을 강요하는 문화까지 있다 보니 술을 잘못 먹는 직원들의 경우 회식을 힘들어할 수밖에 없다. 

한국인의 술 소비가 세계 상위권을  차지한 것은 이 같은 회식 문화가 주된 원인으로 작용했을지 모른다. 러시아처럼 특정 기간에 한꺼번에 많은 술 소비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평소 자주 술을 마시면 그런 ‘자주’가 쌓여 ‘많이’가 되고 결국에는 과음이 된다.

사람마다 주량이 다른 이유는, 몸속에 있는 알코올 분해 효소 양의 차이 때문이다. 알코올 분해 효소가 적은 사람은 술을 조금만 마셔도 빨리 취하기 쉽다. 분해 효소에 의해 알코올은 아세트알데히드로 대사가 되고, 아세트알데히드는 여러 단계를 거쳐 물과 탄산가스로 변한다. 술을 마시고 머리가 아프고 구토가 나고 얼굴이 달아오르고 가슴이 뛰는 것은 대사 과정에서 물과 탄산가스로 분해되지 못하고 쌓인 아세트알데히드에 의한 증상이다. 

'술을 자주 마시면 주량이 늘어난다'는 속설이 있는데, 술 마시는 빈도를 높여 늘어날 수 있는 알코올 분해 효소 양은 20~30%에 불과하다. 실제로 늘어날 수 있는 양은 소주 1~2잔 정도인 셈이다. 또한 엄밀히는 주량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뇌의 각성 활동이 증가했다고 보는 게 맞다. 몸은 알코올을 제대로 분해하지 못하는데, 뇌에서는 '술을 마실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술을 잘 마신다는 것이 건강의 증거는 아니다. 오히려 술을 마셔도 잘 안 취하는 사람일수록 건강에 조심해야 한다. 아무리 알코올 분해 효소가 많더라도 숙취까지 없애 줄 수는 없다.
 
한국 사람은 유난히 ‘술’에 호의적이며 관대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음주문화로 이어진다. 이 음주문화가 좋은 점이 있을 수도 있지만 폐해가 더 많다는 점이 주목해야할 부분이다. 술도 음식이니 마시지 말라고는 못하지만 술 잘 먹는다고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떠오른다. 

우리나라는 화려한 술 문화를 자랑한다. 폭탄주, 잔 돌리기, 파도타기 등등. 하지만 이러한 술 문화는 결국 ‘만취’에 도달한다. 취한다는 것은 단순히 자신만의 문제라고도 생각할 수 있으나 주변사람들의 불행이 될 수도 있고, ‘음주운전’, ‘성희롱’, ‘가정파괴’등 2차 피해의 발생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음주문화를 접함에 있어 신중함을 기해야 하며 단순한 ‘즐거움’의 문화라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다가오는 백세시대를 대비하고 국민들의 건강을 위하여 억지로 권하는 음주문화는 이제는 바꿔야 한다. 집단 내의 단합도 좋지만 그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가정이다. 이미 깊게 뿌리박혀 있지만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긴 술자리를 줄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직장회식문화, 대학신입생 환영문화 등 술을 잘 먹어야 출세한다는 속설을 이제는 버려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음주문제가 절주문제로 표현되듯이 단지 적당한 음주는 상관없다는 식으로 알코올 문제 대부분을 국가와 사회책임이 아니라는 인식으로부터 이제는 적극적인 예방과 개입으로 나아가는 방향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
 

조성호 칼럼니스트 sundaykr@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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