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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진퇴양난?

기사승인 2017.08.10  09: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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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금호타이어 인수전에서 점점 코너에 몰리는 형국이라 한다. 박 회장 측에 부정적인 상황들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입지가 좁아지는 흐름을 보이고 있는 것인데, 금호타이어 채권단이 계약체결 시한으로 8월 말까지 정한 만큼 박 회장의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 회장이 협상카드로 쥐고 있던 상표권 사용조건과 관련해 채권단이 박 회장 측 원안을 전격 수용하면서 계약체결을 거부할 명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채권단도 상표권 사용조건 관련 의사결정을 내릴 때마다 금호산업에 공문을 보내 박 회장 측의 의사를 확인했지만, 이번 결정을 내린 후엔 박 회장 측에 수용 여부를 묻지 않았다는 점도 박 회장 측의 의사와 상관없이 종전의 매각절차를 계획대로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여기에 정부도 지역사회와 정치권에서 금호타이어의 더블스타로의 매각 반대 목소리에 대해 선을 긋는 모양새인데, 금융 당국에선 금호타이어 매각과 관련한 의사결정은 채권단에 일임하며 지켜보겠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정부는 박 회장 측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상태인데, 공정거래위원회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계열사 부당지원' 혐의에 관해 조사에 착수한 것이다.

경제개혁연대가 제기한 의혹에 대해 공정위가 제보시스템 등록 등 관련 절차를 진행하며 조사 착수 결정을 내린 것인데, 재계에선 공정위가 본격적으로 조사에 착수할 경우 금호타이어 인수를 추진하는 박 회장 측에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박 회장 측은 채권단이 계약체결 기한으로 삼은 오는 30일까지 최대한 결정을 미루면서 당분간 여론전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형제의 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창업주 박인천(朴仁天)이 1946년 광주택시를 창업하고 1948년 9월 현재의 금호고속인 광주여객자동차(주)를 설립하며 출발하였다.

1960년 삼양타이어공업, 1968년 한국합성고무, 1972년 금호실업을 설립하였고, 1977년에는 제일토건을 인수하여 금호건설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1984년 삼양타이어공업과 금호실업을 금호(주)로 합병하였고, 1985년 한국합성고무와 금호화학을 합병하여 금호석유화학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1988년 2월에는 대한민국 제2의 민간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을 설립하였고, 1999년에는 금호타이어와 금호건설을 합병하여 그룹 지주회사인 금호산업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2004년부터 금호그룹의 명칭을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 바꾸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건설·레저 부문, 화학·타이어 부문, 운송·물류 부문, 금융·인프라 부문 등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건설·레저 부문에 금호건설·대우건설·아시아나레저·금호리조트 등이 있으며 운송·물류 부문에 아시아나항공·금호고속·아시아나공항개발·서울고속버스터미널·금호터미널·한국복합물류·아스항공 등이 있다. 

화학·타이어 부문에는 금호타이어·금호석유화학·금호피앤비화학·금호폴리켐·금호미쓰이화학 등이 있고 금융·인프라 부문에는 금호생명·금호종합금융·아시아나IDT·아시아나에바카스·금호렌터카·인천공항에너지·금호개발상사·금호오토리스 등이 있다.

그밖에 1977년 설립한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음악·미술 등의 분야에서 다양한 문화예술 지원사업과 예술인 후원 활동을 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6년 11월 한국자산관리공사와 대우건설의 주식매매 계약을 체결하여, 대우건설 주식 72.1%을 6조4천255억 원에 인수하였고, 2008년 3월 대한통운을 4조1천40억에 인수하면서 거침없이 질주하게 되었다. 

그러나 리먼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경제위기와 건설경기 불황으로 금호그룹이 유동성 위기를 겪게 되면서 2009년 6월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산업은행과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체결하여 대우건설을 재 매각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를 인수할 만큼 여력이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이 무렵 형제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하였는데, 박삼구 회장의 동생인 박찬구 당시 금호아시아나그룹 화학부문 회장은 2009년 3월 유동성 위기에 빠져 있던 금호산업 지분을 전량 매각하고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대폭 늘려 그간 지분을 똑같이 쥐고 있던 형제간의 규칙을 깨뜨렸다.

2009년 7월 박삼구 회장은 동생 박찬구 회장을 해임하고, 박삼구 회장 본인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그룹은 금호아시아나와 금호석유화학 두개로 쪼개지게 된다. 

이어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금호생명 매각 결정을 하는 등 재무구조 개선에 집중하게 되었지만 대우건설 재매각이 무산되면서, 2009년 12월 30일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는 워크아웃을, 아시아나항공은 자율협약을 선언한다. 

이듬해인 2010년 상반기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는 채권단과 경영 정상화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구조조정에 들어가게 되면서 박삼구 회장이 경영에 복귀한다.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대한통운을 CJ그룹에 매각하고 금호산업 자산인 금호고속, 서울고속버스터미널, 대우건설 주식을 패키지 딜로 매각한 것도 재무구조 개선에 큰 도움이 됐다. 

이런 노력으로 2014년 10월 금호산업은 자본잠식에서 벗어나 워크아웃을 마쳤으며, 금호타이어와 아시아나항공도 12월도 워크아웃과 자율협약을 마치게 되었다.

2015년 2월 금호산업의 채권단은 금호산업의 지분 57.4%에 대한 매각공고를 내고 입찰에 들어갔다. 금호산업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주사 격으로 아시아나항공의 지분 30.08%을 가진 최대주주다. 따라서 금호산업을 인수하면 아시아나항공의 경영권이 추가로 발생하게 된다. 

금호아시아나그룹(錦湖아시아나그룹,Kumho Asiana Group)은 금호산업을 모기업으로 삼으며 금호타이어와 아시아나항공을 모체로 하는 대한민국의 재벌 기업 겸 기업 집단이다. 

한진그룹처럼 운송업이 그룹의 기반이며 나주 출신의 박인천이 1946년에 세운 광주택시(현재의 금호고속)가 그룹의 시점이다. 본사는 광화문역 및 서울 역사박물관 인근인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76(신문로1가 115)번지에 있다. 

2006년 2월 그룹 창립 60주년을 맞아 20년 동안 사용해 오던 K를 마감하고, 날개 모양을 단 새로운 CI를 선포하였다.
 

김쌍주 주간 sundaykr@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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