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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주주권리 강화’ 시도 붐이 일고 있다. 왜일까?

기사승인 2018.03.06  10: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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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액주주운동의 결과로, 여기엔 명암이 존재한다.

한화그룹이 주주총회 분산과 전자투표제를 시행한다고 밝힌데 이어 현대자동차와 포스코는 일반 주주들의 추천을 받아 사외이사들을 선임하게 되는 등 ‘주주권리 강화’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CJ그룹도 최근 주요 대기업들이 강조하는 ‘주주권한 강화’ 흐름에 동참한다고 한다.

CJ는 22일 10개 상장사의 주주총회를 분산 개최한다고 밝혔는데, 당초 CJ는 3월 23일 모든 계열사의 주주총회를 개최할 계획이었으나 주총집중으로 주주들의 불편이 예상됨에 따라 주총을 3월 26일, 27일, 28일 사흘간 나눠 열기로 했다고 한다.

또한 물류계열사 CJ대한통운과 해산물 가공식품업체인 CJ씨푸드는 주주들이 주총회장에 참석하지 않더라도 온라인으로도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전자투표제를 우선 도입한다 하며, 두 계열사를 시작으로 추후 다른 계열사에도 적용될 계획이라 한다.

현대백화점그룹 또한 경영 투명성을 높이고 주주들의 권익보호, 기업의 사회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그룹 내 주요 상장 계열사에 감사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24개 위원회를 운영하기로 했다고 한다.

기업들이 ‘주주권리 강화’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회사가 잘되려면 소액주주들이 회사의 경영에 관심과 감시가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지배주주와 소액주주가 함께 정도(正道) 있는 주주 권리의식으로 회사 운영에 일조해야 한다. 이는 곧 주주운동시대가 개막되었기 때문이다. 소위 소액주주운동이다.

주총을 앞둔 기업들이 소액주주 때문에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경영진들은 총회꾼들의 몇 마디 의사진행 방해가 고작이던 희의장에서 소액주주들의 조직적인 공세에 혼쭐이 나기도 했다. 물론 소액주주들의 목소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미 주주의 대표소송제가 법제화 되었고, 경영진의 잘못된 의사결정에 대한 개인적 배상책임도 법정논쟁으로 비화되고 있기도 했다.대주주의 뜻에 따라 일사천리로 처리되던 시절엘 비하면 엄청난 변혁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정경유착과 불투명한 경영관행으로 얼룩진 과거의 기업문화가 개혁되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정부의 인허가와 불투명한 내부거래 가 기업의 성패를 좌우했던 정치 예속적인 기업환경 속에서 불가피했던 관행이었다고 변명할 수도 있다.그러나 후진사회의 유산을 청산하고 경영투명성을 강화하자는 제도개혁에 어느 누구도 반대명분을 제기할 수 있겠는가. 소액주주운동도 이러한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기업의 다수주주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서 뛸 수 있도록 채찍질하자는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이러한 운동이 큰 기여를 한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지난 1년간 가장 큰 성과를 거두었던 개혁과제가 바로 기업의 경영투명성 강화와 지배구조의 선진화였다고 볼 수도 있다. 실제 구조개혁의 차원에서 이미 경영투명성을 제고시키는 입법조치가 완료되어 이사와 감사의 책임을 강화하고, 소액주주의 대표 소송제를 채택하는 등제도적으로는 선진국 못지않은 지배구조의 선진화가 짧은 기간에 도입된 셈이다.소액주주에게 사외이사의 추천권을 부여하고, 주주권의 존중을 명문화하는 정관개정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에도 불구하고 소액주주의 권한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끊이질 않고 있다. 한편에서는 소액주주운동이 불러올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주주의 이익을 극대화시키자는 취지에서 출발한 순수한 취지가 퇴색하고, 기업 가치와 주주의 이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방향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는 논란도 등장하고 있다. 시민운동의 역사적 경험은 아무리 바람직한 취지에서 출발한 것일지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스스로의 정치적 논리에 얽혀 본래의 순수성이 퇴색하게 되는 과정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소액주주운동도 재벌개혁이나 공익확대라는 정치적 목표와 연계되어 추진될 때는 상당한 부작용을 수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기업의 본질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지 결코 사회적 공익이나 형평을 제고시키기 위한 조직이 아니기 때문이다.따라서 경영진에 대한 감시를 지나치게 강화할 경우에 나타날 어두운 그림자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시키자는 운동이 오히려 경영활동을 위축시키고, 기업이익을 축소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이런 의미에서 긍정적인 기여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한계를 설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선 소액주주 운동은 ‘주주 이익의 극대화’라는 순수한 소액주주의 바람을 최상의 목표로 설정하여야 한다.그러나 지나친 경영투명성의 요구나 대표소송의 남발로 인한 의사결정의 지연과 소송비용의증가는 주주의 이익극대화에 역행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또한 외국인 투자자와의 연계를 통한 과다한 경영간섭도 국내기업의 경영성과를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실패한 투자결정에 대한 개인배상도 극히 제한적으로 요구되어야 할 것이다. 투자위험과 프리미엄은 병행하기 마련이다. 기업의 모든 의사결정이 불확실한 미래에 운명을 거는 모험정신에서 비롯되지 않는가. 성공에 대한 보상은 없고, 실패에 대한 배상책임만 있다면 시장경제의 뿌리를 이루는 벤처정신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지구상에 어느 누가 변화하는 시장상황을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어느 소액주주 자신에게도 불가능한 일이다.

미국이나 영국의 법원이 정당한 의사결정에 대한 사업실패에 개입하지 않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투자실패에 대한 배상은 경영자의 악의적인 횡령이나 부정과는 엄격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소수의 권리를 대변하는 시민운동의 성공여부는 결국 ‘적극적인 소수’가 ‘소극적인 다수’의 이익을 증진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소수가 침묵하는 다수의 이익을 침해한다면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는가가 불분명하게 된다.소수의 대표성을 근거로 다수의 의사를 무시한다면, 그것은 지배주주의 횡포에 버금가는 또 다른 민주주의 정신의 배반이 된다.

다수 주주의 의사에 반하는 소송에 대한 거부권이 주어져야 한다는 주장이나, 지나친 경영간섭의 폐해를 줄이려는 선진국의 경험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행여 소액주주운동의 성격이 변질되어 반기업적이고, 반자본주의적인 문화를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이것 역시 시장경제의 창달을 바라는 다수의 이익을 침해하게 될 것이다. ‘주주의 이익 극대화’라는 그 순수함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 때 ‘적극적인 소수’가 침묵하는 다수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성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문종철 전문위원 sundaykr@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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