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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전쟁에서 지는가

기사승인 2021.09.10  09: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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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심으로 하는 정책은, 명분으로 하는 결정을 이길 수 없다.

1990년 1월 17일 밤 이라크 바그다드 상공. 어둠 속에서 가오리처럼 생긴 기묘한 비행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미 공군 스텔스 전폭기 F-117이었다. 이라크군 레이더에 탐지되지 않은 채 나타난 F-117에서 떨어진 폭탄은 바그다드의 통신센터에 명중했다. 1차 걸프전의 시작을 알리는 ‘사막의 폭풍’ 작전 개시를 알리는 공격이었다.

2003년 3월 20일. 미군과 영국군은 바그다드로 진격을 개시, 이라크 전쟁에 돌입했다. 1차 걸프전 목표가 쿠웨이트 해방이었다면, 이라크 전쟁은 사담 후세인 제거를 노렸다.

 

미국은 1차 걸프전에서 승리,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했다. 하지만 사담 후세인보다 훨씬 빈약한 군사력을 지닌 아프간 탈레반과 이라크 무장세력은 굴복시키지 못했다. 군사 초강대국이라 불리는 미국의 굴욕적인 결과다.

 

정치와 전략의 차이가 결과를 바꿨다

 

흔히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무기나 훈련 수준 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요소는 정치와 전략이다.

국가를 이끄는 정치 지도자들은 군대가 싸워야 하는 올바른 대의명분을 제공해야 한다. 군대의 사기를 높이고 국가의 역량을 결집하며 국제사회의 비판을 비하면서 외교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다.

국가적 차원의 전쟁 목표와 전략도 정치 지도자들의 몫이다. 문민정부가 설정한 전략과 전쟁 목표를 군대가 군사적 측면에서 구현하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의 전쟁 체제다.

1차 걸프전에서는 이같은 점이 명확했다. 노먼 슈워츠코프 당시 미 중부사령관은 백악관으로부터 전쟁 지침을 받았다. △쿠웨이트 해방 △걸프 지역을 위협하는 이라크 전력 와해 △대량살상무기 능력 제거였다. 이라크의 정권 교체나 이라크군 무장해제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실제로 미군은 쿠웨이트와 이라크 남부의 이라크군 섬멸에 주력했을 뿐, 바그다드 진격은 실행하지 않았다.

 

전쟁 목표가 제한된 상태에서 ‘이라크의 침공을 받은 동맹국을 해방한다’는 명분까지 갖춰진, 최적의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이 같은 측면에서 이라크, 아프간 전쟁은 실패한 전쟁이었다.

대량살상무기 능력 제거를 앞세워 개시한 이라크 전쟁에서 미군은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후세인이 보유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량살상무기는 이라크에 존재하지 않았고, 테러 조직과 후세인 정권의 연계도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쟁의 대의명분은 치명적 타격을 입었다.

 

이후에 등장한 또 다른 명분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에서 독재적 권위주의를 제거, 민주주의를 정착한다’는 것이었다. 사실상의 국가 재건으로, 아프간에도 적용됐다.

 

하지만 한국 등 민주화가 이뤄진 국가는 미국의 개입이 아닌, 국민의 자체적인 노력으로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섰다는 점을 간과했다. 독일과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을 겪기 전에 민주주의를 경험한 덕분에 패전 후 민주주의를 거부감없이 받아들였다.

그런 전례를 무시한 채 미군을 앞세워 서구식 민주주의를 제대로 체험하지 못한 이라크와 아프간에 민주주의를 이식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미국은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고 미군을 집으로 돌려보내면, 이라크인들이 민주주의 정부를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근거 없는 환상이었다. 미군은 이라크에 계속 머물게 됐고, 전사자와 전쟁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아프간에서는 불분명한 전략 문제가 겹쳤다. 9.11 테러를 일으킨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 제거, 아프간 재건이 겹쳤다. 대테러전과 국가 재건이라는 과제를 동시에 떠안았지만, 전력이 제한적이었던 미군은 어느 한 쪽에 역량을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테러조직을 제거하면서 아프간 재건 임무를 수행하다보니 성과는 지지부진했고 인명피해와 비용은 늘어나기만 했다. 탈레반을 몰아냈으니 아프간에 민주주의가 꽃피울 것이라는 기대도 이뤄지지 않았다. 부패한 아프간 정치권에서 민주주의 정착은 지지부진했다.

빈 라덴 사살을 대테러전 승리의 성과로 내세우면서 ‘출구전략’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환상에 젖은 잘못된 정치와 전략이 가져온 결과다.

 

군사적 측면에서도 미국은 실패했다.

 

이라크, 아프간 전쟁에서 미군은 기동전을 구사했다. 기동성이 뛰어난 소규모 정예부대와 막강한 공군력을 함께 투입하고, 현지 협력자(쿠르드, 북부동맹)를 활용해 후세인과 탈레반을 단기간 내 무너뜨렸다.

 

이같은 방식은 1차 걸프전처럼 제한된 범위 내에서 이뤄지는 정규군 간 싸움에 적합하다. 정권이나 체제 전복이 목적이라면, 새로운 정부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대규모 병력이 주둔해 치안을 유지하는 안정화 작전이 필요하다.

 

적은 병력으로도 안정화 작전이 가능했던 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 일본의 사례가 있지만, 이들 국가는 민주주의 경험을 지녔고, 내부적으로 분열이 일어나지도 않았다.

이라크와 아프간은 권위주의 정권이 장악하고 있었지만, 부족과 종교 등의 차이로 인한 분열이 뿌리 깊게 남아있었다. 정권이 무너지면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이 벌어질 가능성이 컸다.

 

이들 국가에 대량의 무기가 퍼져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수의 무장조직이 형성돼 미군을 공격할 가능성이 컸다. 40만~50만 병력을 투입해야 안정화 작전이 성공한다는 지적이 나왔던 이유다.

 

하지만 미군은 대규모 병력을 오랜 기간 배치할 능력이 없었다. 1,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에서는 징병제를 통해 대규모 병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73년 모병제로 전환한 직후부터는 베트남전쟁 당시처럼 50만 대군을 전장에 오랜 기간 투입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군대의 인건비 비중이 높은 모병제를 적용하면 군 조직 규모는 줄어든다. 이에 따른 전투력 저하를 막기 위해 첨단무기 비중을 높이게 된다.

 

이는 전격전에 따른 ‘충격과 공포’ 방식이다. 적 전쟁지도부나 주력부대를 궤멸하는데 적합하지만, 안정화 작전에는 적합하지 않다.

특히 ‘전쟁지도부 섬멸=종전’ 공식이 통하던 독일이나 일본과 달리 미국과 문화가 다른 이라크, 아프간에서는 안정화 작전에서의 문제점이 더욱 두드러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모병제 하에서 병력을 늘리면 군비는 급속히 늘어난다. 미국의 경제를 악화시킨다. 징병제 전환은 정치적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전체 병력 증강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미군 장병들은 전장에 자주 순환 배치됐다. 이라크, 아프간 정부군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전장에 자주 투입된 미군 장병들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폐해졌지만, 미국이 바라던 안정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돈과 병력, 시간을 소모하고도 얻은 것은 없었다. ‘손절’이 불가피했던 이유다.

 

현대 전쟁은 유니폼 입은 양 팀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90분 동안 뛰면서 낸 점수로 승패를 겨루는 축구 경기처럼 규칙과 시간이 정해진 정규전이 아니다. ‘테러와의 전쟁’처럼 종료 시점을 알 수 없는 소모전 양상이 두드러진다. 이는 시간과 의지의 싸움이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이나 첨단 무기보다는 전투 의지와 훈련 수준이 높은 보병이 더 중요하다.

 

 

미국의 사례는 병력 숫자를 줄이면서 첨단 무기로 전력 공백을 대체하는 ‘국방개혁 2.0’을 추진중인 한국에도 시사점을 던져준다. 한반도 유사시 안정화 작전 추진방안과 전술, 적정 병력 소요, 행정체계 구축 등에 대해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아프간 전쟁의 교훈을 우리나라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민심으로 하는 정책은, 명분으로 하는 결정을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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